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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히트한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이번 설 연휴에 봤다.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재밌어서 16부작을 금방 몰아봤다.
스토브리그(Stove League)는 스포츠 리그에서 정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비시즌 기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에는 팀을 재정비한다. 선수 영입, 트레이드, 연봉 협상이 이루어지고 필요할 경우 감독, 코치 교체 등 팀 구조를 개편한다.
스토브리그는 드림즈라는 만년 꼴지팀에 백승수(남궁민)가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팀이 격변하는 이야기다. 드라마 안에서도 딱 스토브리그 만큼의 시간이 흐른다. 그래서 실제 야구 경기를 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백승수 단장은 맡는 팀마다 우승을 시키는 ‘우승 청부사’다. 분석력과 판단력이 좋다.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는 권력에 불복하고 그대로 밀어 붙인다. 언뜻 자기만 잘난 것처럼 굴기 때문에 윗 사람들의 미움을 산다. 하지만 결국은 일을 되게 만든다.
야구가 주제긴 하지만 능력 있는 리더에 대한 이야기다. 백승수 단장이 보여주는 무모함과 파격적인 결정을 본 직원들은 처음엔 질색하지만 점점 드림즈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걸 체감하면서 백 단장을 동경하고 따르게 된다.
드림즈의 모기업 회장 조카인 권경민(오정세) 이사가 백승수 단장에게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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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단장님 일처리를 남자로서 응원할 수밖에 없게끔 그런 식으로 하시던데…
이 대사는 권경민 이사가 백승수 단장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반대로는 일을 시끄럽게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복합적 심리를 묘사한다. 명대사다.
스토브리그는 최근 보기 시작한 <중증외상센터>와 비슷한 거 같다. 불도저 처럼 밀어붙이고,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주위 사람들이 따르게 만들고… 두 주인공이 모두 이런 사람이다. ‘이번엔 어떻게 일을 마무리 지을까?’ 반복적으로 기대하고 그걸 충족시키는 재미가 있다.
백승수 단장은 권경민 이사와 줄곧 갈등 구조를 만든다. 권경민 이사는 적자가 나는 드림즈를 모기업 회장의 의지에 따라 해체시키려고 한다.
권 이사는 백 단장에게 말한다. “너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백 단장은 대답한다.
“말을 잘 들으면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판타지지만 이 대사 만큼은 꽤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말을 잘 든는 것보다 중요한 건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