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매뉴얼은 왜 이렇게 개판인 걸까

신입으로 엔지니어 일을 시작했을 때 제일 큰 불만이 업무 매뉴얼이었다. 아주 개판이다.

대체 신입은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건가… 라는 생각을 매일 했는데 다 떠먹여 달라고 징징대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 솔루션을 다루는 건 구글링해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우리 회사 안에서 해결을 해야 되는 거다.

근데 그걸 매뉴얼도 없이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근데 신기한 건 맨몸으로 부딪히면 일이 되긴 했다. 그 방법이라는 게 결국 주변 선배한테 물어보면서 하는 거다.

하다 막히면 물어보고 다시 물어보고… 그러다보면 어찌저찌 일이 되긴하는데 이거 진짜 비효율다. 처음해보는 사람은 매번 물어보고 경험자는 매번 답변해주다보면 물어보는 사람은 상대방 바쁠까봐 눈치봐야되고 대답해주는 사람은 바쁜데 시간 내서 대답해줘야 된다. 시간 낭비에 감정 낭비다.

기원전 3000년 수메르인 조차 구전으로 지식을 남기는 게 비효율적이라 문자 체계를 만들어서 후대에 남기기 시작했다는데 여긴 대체 뭐하는 건가 싶다.

물론 물어 물어가며 몸빵으로 버티다보면 누구나 어찌저찌 일 하는 법을 알게 된다. 그것도 사실이다. 근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과 비용이 문제다.

신입이 적응하기 힘든 건 둘째 치고 결국 기술 지원이 고객 만족이랑 직결되는 건데 이런 구조가 자기 얼굴에 침뱉는 겪인 걸 알아야 되는데 그런걸 신경쓰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업무를 표준화해서 매뉴얼로 만들고 엔지니어들이 연차에 관계없이 비슷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되는데 이건 뭐 잘하는 사람은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답이 없다.

스타벅스는 어느 지점에서 먹어도 커피맛 똑같이 하려고 기계 비중 늘리고 매뉴얼화 해서 운영한다고 하던데 그런거 좀 배웠으면 좋겠다.

정리되지 않은 매뉴얼 이미지

그럼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나 보면… 기술 문서를 매뉴얼로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엔지니어나 개발자인데 양쪽 다 바쁘다. 개발은 제품 개발하느라 바쁘고 엔지니어는 프로젝트 뛰고 고객 응대하느라 바쁘고…

매뉴얼 문서 같은 건 아무도 만들라고 시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도 그만 안 만들어도 그만인데 그걸 보상도 없이 누가 만들겠나. 그리고 매뉴얼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것들을 계속 업데이트 해줘야되는데 개인이 그런 걸 할 여력은 더욱 없다.

나 같이 글쓰고 매뉴얼 만드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문서 하나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일반적으로 열에 아홉은 글이라고는 억지로 써야할 때 아니면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매뉴얼을 만드는 문화가 형성되는 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강제로 매뉴얼을 만드는 롤을 누군가에게 주거나 자발적으로 매뉴얼을 만드는 사람에게 물질적 보상을 하던가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다른 회사를 가본적이 없어서 어떨까 궁금하긴 한데 주변에 들리는 말로 삼전 직원도 체계 없다고 불평하는 마당이니 국내 솔루션 업계 평균도 비슷할 거 같긴하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면 계속 비효율만 늘어나는 거고 어떻게든 문서화로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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